한국의 과학·기술 역사

1970년대 해수 담수화 기술 개발, 왜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엘보리보 2025. 4. 8. 09:43

 

1970년대 해수 담수화 기술 개발, 왜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1970년대는 한국이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로, 수도권과 산업단지의 급격한 팽창으로 인해 물 부족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해수를 식수로 바꾸는 ‘해수 담수화 기술’이 하나의 해법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정부와 연구기관은 중동 등 해외 수출도 염두에 두고, 자체 담수화 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한국기계연구소와 일부 대기업들이 시제품을 제작하며 실용화 가능성을 검토했다.

 

1978년, 포항제철 인근에서는 한국 최초의 해수 담수화 시범 플랜트가 가동되었다. 이 장비는 역삼투압(RO) 방식과 다단 플래시 증류방식을 결합한 복합형 담수화 장치였다. 하루 수백 톤의 담수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품질 면에서도 먹는 물 기준을 충족했다. 이 기술은 당시 아시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선진적인 것으로 평가받았고, 일부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이 담수화 수출국이 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이후 대중화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유지비용과 낮은 경제성이었다. 담수화 장치는 전력 소모가 많고, 필터나 부품 교체 주기가 짧아 유지 비용이 상당했다. 또한 당시에는 지하수나 강물을 정수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했기에, 굳이 해수를 사용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 특히 수도권이나 내륙지방은 바다에서 멀어 담수화의 실효성이 낮았다.

 

또 다른 이유는 기술적 한계와 정부의 투자 우선순위다. 당시 한국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성장 전략을 택하고 있었고, 담수화는 군사적 혹은 재난 대비용의 보조 기술로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지 않았고, 연구도 점차 축소되었다. 1980년대 들어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효율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담수화 기술은 비용 문제로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결국 1970년대 담수화 기술은 실험적 수준에서 멈추었지만, 그 도전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기후 위기와 물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당시의 기술과 경험은 재해 대응이나 도서지역 식수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기술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고, 때로는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로 다시 주목받는다.